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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서핑 아카이빙 북 'SURF PLEASURE', 북토크와 출판이벤트 현장스케치

FEATUR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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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F PLEASURE'는 단순히 서핑 장소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서핑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배러댄서프의 'SURF PLEASURE' 

출판과 서핑이 이끄는 관광과 문화의 변화"


종료 ============================

SURF PLEASURE 북토크&출판이벤트 현장 스케치 기사를 읽고 댓글로 기대평을 남겨주신 분들 중 5분께 도서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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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벤트 기간 : 11/5~11/11

- 당첨자 발표 : 11/15(금)

- 당첨 인원 : 5명 


============================ 종료


+ 당첨자 : mybali, 조 jojo, 아뮤세, 쏘금, 뚜아 

아래 링크로 당첨자 정보를 보내주시면 도서를 배송해 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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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러댄서프는 서핑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강조하며, 서핑이 어떻게 한국의 자연과 관광,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서핑 스팟들의 발전과 그로 인한 지역 커뮤니티 형성, 문화 교류 등을 다루며, 서핑이 제주의 관광업과 어떤 식으로 융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또한 서핑의 즐거움을 테마로 하여, 단순한 여행객뿐만 아니라 서핑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은 서핑이 바다의 자연경관과 삶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SURF PLEASURE

총 PAGE: 208P, 양장본

가로*세로*높이: 196x263x23
ISBN: 979-11-989113-0-8(03690)


저자소개
장지은: 배우이자 영상 제작자로, ‘배러댄서프(Better than Surf)’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서핑과 자연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며, 현재 제주에서 서핑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김준용: 현대카드 브랜드 디자이너, 라인 브랜드 디자인 리드를 거쳐 ‘배러댄서프(Better than Surf)’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에 거주하며 서핑을 하고 일러스트를 그리며, 일과 서핑의 밸런스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고 있다.




 


‘나 자신이 한국에서의 첫 서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서핑의 세계적인 전도자인 하와이의 ‘Duke Kahanamoku’에서 듀크를 뽑아서 나의 별칭으로 했습니다. 제주도의 듀크 포인트는 1997년 내가 해녀의 집 앞의 파도를 처음 탔기 때문에 그대로 ‘듀크 포인트’로 한 것입니다.’ DUKE CHANG NAM LEE - 118p.


처음 알았어요. 공기가 달 수 있다는 걸.
SU JEONG IM - 27p.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자연과 보드와 파도, 이 세 가지가 같이 공존하면서 교감하는 운동이라고 생각을 해요. 쉽게 말해서 자연과 교감하는 거죠. 제가 서핑하는 이유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파트가 자연과 파도와 교감하는 것이에요. 그게 저에게 제일 재밌는 요소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큰 파도를 탈 때 파도에서 느껴지는 힘, 물의 흐름, 파도의 힘이 발끝에서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SU HYUN IM - 127p.


잘 타는 사람들의 라이딩을 보면 마치 밥로스의 그림처럼 이미 그려져 있는 것처럼 탄단 말이죠.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하나의 그림이나 하나의 시나리오, 드라마처럼. 저는 드라마가 있는 서핑을 좋아해요.
Saku - 134p.












출판 이벤트 현장 스케치

9월 28일 제주 한경면 프레스드라이버에서 이루어진 출판이벤트는 1부 북토크와 2부 DJ파티로 이루어졌다. 







출판을 기념하여 프레스드라이버와 협업한 한정판 티셔츠가 현장에서 실크스크린으로 제작되어 판매되었다.






1부 북토크 세션

북토크 세션에는 듀크 이창남 선생님과 서퍼이자 DJ 사쿠, 프로서퍼이지 멧엔멜 대표 홍종수, 서핑포토그래퍼 정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지은이 참석하여 책에 대한 이야기와 서핑과 삶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Q 안녕하세요 장지은님, 이 책을 디렉팅을 하셨는데 'SURF PLEASURE'라는 책을 만든 계기와 의도가 있을까요?


처음엔 남편이 큰 파도를 타고 나가면 저는 보통 해변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퍼들을 기록하곤 했는데요. 파도에 울고 웃고 좌절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핑에 빠진 사람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고 서핑을 하기 쉬운 바다로 이사를 하기도 하고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사람들이 너무 이상해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하면서 느꼈던, 삶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바다에서 느꼈을 두려움과 남몰래 숨겨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 서퍼들의 인터뷰 내용과 서핑 사진을 토대로 한국 서핑 스팟의 역사와 한국 서핑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SURF PLEASURE’라는 이름의 서핑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Q 책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기억나는 부분이 있었을까요?


특히 이창남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80년대의 우리의 바다는 이러했구나 90년대에 서핑스팟에 이런일들이 벌어졌구나. 우리가 지금 얼마나 좋은 환경을 누리고 있고 이 환경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가  조금만 지나도 서핑스팟이 여럿 사라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깨가 조금 더 무거워졌고, 우리의 다음 세대 서퍼들을 위해서라도 기록해 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성 녹음을 통해 인터뷰 정리를 할때도 많은데 녹음 본을 듣다 보면 내적 친밀감이 너무 쌓여서 혼자 인터뷰어와 절친이 되는 느낌이라 항상 즐거웠습니다.

어려웠던 점은 시간과 정성이 너무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애정과 존경을 표해야 할  멋진 서퍼들이 많은데 다 못담은 점이  아쉽고 어렵고 힘든 점이었습니다. 



Q 안녕하세요 이창남 선생님, 많은 한국의 서퍼들이 궁금해할 것 같은데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1952년생이고 출생지는 일본 도쿄입니다. 국적은 한국이고 재일교포 2세 입니다. 부모님의 고향은 제주도의 동쪽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와 신창리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강점 때문에 삶이 어려워졌던 고향을 떠나서 일본으로 넘어오셨던 것입니다.


Q 일본에서도 서핑 1세대로 알고 있어요. 서핑을 처음하게 된 계기와 일본에서의 서핑 스토리를 알고 싶습니다.

 

1960년대 일본은 서핑을 TV나 잡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정도의 시대였습니다. 수영을 잘했던 나는 

한 여름에 한두 번 가는 바다에서 에어매트에서 서핑의 모방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18세(1970) 때, 어느 일본의 친구의 집에 놀러 갔는데, 창고 안에 우연히 먼지가 쌓인 중고 롱 보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 보드 혹시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팔아주라”고 물어봤더니 6,000엔 (한화 6만 원, 지금이라면 20만 원 정도)로 좋다고 그 친구는 답했지요. 이것이 내 인생이 서핑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서핑의 길은 쉽지 않았지요. 지금의 SNS처럼 정보를 얻는 수단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포인트의 장소, 파도가 있는지 없는지의 예측, 기본 기술 등을 배우는 수단, 그리고 리쉬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왁스의 구입이나, 보드의 수리 방법도 아는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거품파도를 타는 것이 즐겁고 약간 짧은 보드에서도 서서 탈 수 있게 되면서 2년 후에 해변의 서핑 샵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찾아 보드 수리를 하면서 매일 열심히 연습하고 첫 출전 대회에서는 태풍 컨디션 속에서 입상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시간이 있는 한 바다에 다니면서 출장(출전)할 수 있는 대회에는 계속 나가 상위 입상 성적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얻었고, 1978년에는 치바 챔피언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이 타이틀은 당시 프로 선수 인정을 평가받는 대회였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이후의 서핑과 삶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서핑계에서는 프로라고 해도 수입이 낮아 도저히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재일교포는 일본 사회의 취업 차별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결론은 서핑을 계속할 수 있는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시험공부를 하고 합격하면 다시 복귀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2년 후 합격률 5%의 전기기사의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나는 다시 서핑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년의 블랭크(휴식기)는 있었지만 서핑 업계에서는 보드와 슈트의 제공 스폰서 이야기가 몇 가지 있었으며, 그 후 10 년간은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고 대회에서도 상위 입상의 성적도 계속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성적은 2005년(54살 때) ‘Sea Song컵 레전드 부문’ 우승이었습니다.


Q 제주도를 고향처럼 여기시고 90년도에 처음으로 서핑 트립을 오시게 된 이유와 제주 에피소드가 너무 궁금합니다.


1990년까지 나는 주말마다 일본 치바의 바다에 다녔고, 연휴, 휴가 등 시간이 있을 때에는 하와이, 발리에도 다녔지요. 그런데 1990년 5월, 3개월의 출장 중에 3일간의 휴가가 나왔기 때문에 이전부터 궁금했던 한국을 첫 방문 하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는 출장처와 가장 가까운 부산. 비행기는 남해안에서 김해공항으로 착륙하려는 태세였습니다. 남해안의 지도는 미리 머리에 기억하고 있었지만 창가에는 낙동강이 보이고 바로 아래를 본 순간 서핑에 적합한 깨끗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다대포였습니다. 길도 모르고 교통수단이 없어서 다대포 해안에는 갈 수 없었고 그대로 짧은 휴가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4개월 후 제 고향인 제주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교통수단이 없고 여기저기 헤매던 끝에 찾았던 것은 월정리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확실히 서핑이 가능하다고 확신한 나는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포인트 탐사를 실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90년~94년까지는 서울부터 교통편이 좋은 강릉, 속초를 시작으로 포항, 부산 등 동해안을 중심으로 탐사했고, 많은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지만, 경포대나 낙산해수욕장 등 유명한 관광지를 한걸음 떠나면 군부대시설과 철조망 등 통제지역이 많았고, 바다에 들어갈 수 있어도 총을 둔 군인과 사치라이트(큰 조명) 시설이 눈에 들어와 극도의 긴장감이 느껴져서 서핑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강원도는 정말 파도는 좋았지만 사회의 환경은 그런 시대였습니다.

동해안의 포인트는 대략 찾았다고 생각했던 나는 95년부터 고향인 제주도에서 포인트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중문을 시작으로 몇 군데 포인트를 찾는 중에 어느 기업으로부터 서핑 스쿨 개교 제안을 받았습니다. 나는 강습용 보드 4장과 바디 보드 4장, 필요한 부속품을 가지고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출발과 정착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아쉽게도 무산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내 몸과 서핑 장비만 남은 가운데 내가 한국에서 서핑의 창시자이자 서핑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은 더욱더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파도의 조건이 가장 좋은 중문 해수욕장에서 인명 구조의 자원봉사와 서핑 보급 홍보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당시 중문 해수욕장은 높은 파도와 빠른 조류 때문에 해수욕객이 휩쓸리는 사고가 다발하는 해안이었습니다. 거기서 서핑 보드를 이용한 인명 구조법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많은 성과를 올리게 되어, 해경이나 안전 요원까지도 바디보드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경이 되자 서핑에 대한 유익성은 색달동 동네, 경찰, 해경, 소방서까지 공유되어 자유롭게 서핑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습니다. 

이 시기의 중문해수욕장은 서핑을 타는 사람이 저 혼자만이었고, 밀려오는 좋은 파도를 독점적으로 탈 수 있다는 것에 좋으면서도 죄악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곤란한 시기도 맛보았지만 그에 해당한 쾌감과 보람은 더 커졌던 것입니다. 나는 안전 요원 중에서도 수영을 잘하고 서핑에 관심이 깊은 몇 명에게는 서핑을 가르쳐 주기로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색달동 청년회 회장이었던 (고인) 김태오는 가장 열심히 연습했고 나도 그의 열정에 답하도록 지도했습니다. 김태오에 이어 젊은 로컬들도 점점 서핑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시점에 나는 지역 서퍼들의 모임 만들기를 촉구한 결과 98년에는 제주웨이브 클럽이 결성되었습니다. 로컬 서퍼들은 제가 제주도 출신이어서 제주도에 갈 때마다 환대해 주었고 나는 로컬 서퍼들이 필요한 서핑장비에 불편이 없도록 신경 쓰면서 서로의 인연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깊어졌습니다. 그 후 2003년 8월에는 국내 최초로 서핑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Q 중문 색달 해수욕장에는 ‘듀크 포인트’라는 리프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 포인트의 이름도 선생님의 별명을 따라 ‘듀크’라고 불리는 것으로 아는데요. ‘듀크’라는 별명이 어떻게 붙게 되었는지 스토리도 듣고 싶습니다.


한국 포인트 탐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한국 사람들에게 서핑에 관해서 질문했습니다. 주로 스쿠버 다이빙과 윈드 서핑, 웨이크 보드, 스키 등의 관계자였지만, 서핑에 대해선 모두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한국에서의 첫 서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서핑의 세계적인 전도자인 하와이의 ‘DUKE KAHANAMOKU’에서 듀크를 뽑아서 나의 별칭으로 했습니다. 제주도의 듀크 포인트는 1997년 내가 해녀의 집 앞의 파도를 처음 탔기 때문에 그대로 ‘듀크 포인트’로 한 것입니다.




재일교포, 일본 서핑 1세대, 78년 치바 챔피언 한국 서핑 문화의 역사를 만든 개척자, 듀크 이창남 선생님의 파도와의 대화를 담은 이야기를 담았다.



Q 안녕하세요 사쿠님, 제주 이호테우에서 서핑샵을 운영하면서 서핑을 즐기고 계신데요. 이전에는 뱅커였다고 들었어요. 서핑을 하고 사쿠 님의 삶이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요?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3년 후에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딱 2천만 원 모아서 퇴사하려고 했거든요. 1년 차에, 아 이거 안 되겠다. 여기서 그만둬야겠다 생각했어요. 왜냐면 길이 보이잖아요, 회사에서. 그래서 서핑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제일 힘든 곳으로 가자고 해서 돈 모아서 그만뒀어요. 어차피 저는 집이 제주도고, 이호테우가 제 고향이거든요. 내가 이걸 그만둬도 분명히 ‘고향에 가면 할 게 있다’라고 생각했죠. 회사 일할 때는 서울에 있었거든요. 원래 서울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는데 발령을 내니까 거주지가 달라지잖아요, 그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누군가 제 삶을 결정한다는 게. 갑자기 크리스마스 다음 날 어디 가라고 뭐가 뜨고 발령이라고 사내 게시판 같은 데 막 뜬단 말이죠. 누가 나의 삶을 결정하는가 고민을 하면서 ‘안 되겠다, 빨리 떠나서 내 걸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Q. 사쿠 님이 서핑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있나요?


좋은 파도를 만나는 시나리오를 쓰거든요. 너울만 봐도 이걸 어떻게 어디서 잡아서 어떤 부분에서 뭘 하고 어떤 기술을 넣고 어떻게 마무리해야지 마치 마음에 드는 이상형을 봤을 때 이 사람하고 애 낳고 잘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진짜로 됐을 때가 가장 좋아요. 고수들은 파도가 아직 나한테 오지 않아도 이미 머릿속으로 다 알고 있단 말이죠. 살짝 물결만 봐도 이걸 이렇게 타서 이렇게 해야지 했던 그 계획이 다 맞아떨어졌을 때가. 여기서 행텐, 여기서 마무리, 여기서 물구나무서기. 잘 타는 사람들의 라이딩을 보면 마치 밥로스의 그림처럼 이미 그려져 있는 것처럼 탄단 말이죠,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하나의 그림이나, 하나의 시나리오, 드라마처럼. 저는 드라마가 있는 서핑을 좋아해요.


Q 서핑을 다양하고 재밌게 즐기시는 것 같아요!


저희가 추구하는 서핑은 춤 같은 거죠. 파도랑 같이. 메뉴버(Maneuver)를 만들면서, 파도가 무도회장의 파트너라면 에스코트부터 마무리까지 같이 호흡하면서 그 중간에 나만 빠지면 매너가 아니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같이 춤을 춘다고 생각해요. 


Q 제주도 파도는 어떤 것 같아요?


최고죠. 저는 여기 사는 이상 파도 탓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호테우 파도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그 안에서 만족하면서 타려고 해요. 태풍 오면 또 파도 좋고, 그리고 집이잖아요. 마음 편하게 탈 수 있는. 




Q 안녕하세요, 종수님! 프로 숏보더로 활약을 하고 계신데, 사롱 브랜드, 맷앤맬 대표님이시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서핑을 하면서 멧앤멜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사실은 서핑을 하기 위해서 멧앤멜을 시작하게 된 거나 마찬가지예요. 꽤 오래전에 서울에서 게임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도시들을 여행하던 중에 서핑 트립을 다니면서 사롱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사용했었고, 저렴한 숙소에서 지내다 보니 바닥, 침대가 너무 더러워서, 사롱을 깔고 자고 수건으로도 쓰고 옷 갈아입을 때에도 사용하고 자연스럽게 늘 가지고 다녔어요. 지금의 아내가 디자이너거든요. 발리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이런 거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고, 저도 그때 한국에서 서핑 캠프를 했었으니까 괜찮을 수 있겠다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그럼 어쩔 수 없이 발리에 출장을 자주 가겠네! 싶어서요. 사실 사심이 조금 있었습니다.(웃음) 그렇게 제 영어 이름의 MATT 그리고 와이프의 영어 이름 MEL을 합쳐 ‘MATT AND MEL’이 시작된 거죠.


Q 종수 님의 삶 속에서 서핑이 주는 해소가 있나요?


일을 한 뒤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가 필요하잖아요. 저는 그게 서핑인 거죠! 근데 전 사실 헬스장 갔다 오면 스트레스가 쌓여 오거든요. 저는 그래요. 전 서핑을 갔다 오면은 집에 가서 청소를 먼저 할까 빨래를 먼저 할까 설거지를 먼저 할까 그 생각을 하면서 돌아와요. 서핑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요. 제 스트레스가 잘 풀려야 가정도 행복해질 수 있는 거 같아요. 부부가 같이 풀 수 있는 게 있고, 또 각자가 알아서 해소해야 하는 게 있어서 저는 서핑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고, 가정에서 웃는 얼굴로 있는 게 가정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Q 태풍 오는 날, 서핑을 안 하는 분들은 바다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서퍼들은 태풍 오는 바다를 좋아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위험한 상황을 즐기고 이겨내면서 느끼는 희열감이 남다른 것 같아요. 종수 님한테 서핑이 주는 그 위험을 이겨내는 매력적인 부분은 무엇인가요?


요즘 느끼는 건, 그래도 ‘나 아직 살아있다.’입니다. 제가 원래 운동선수였거든요. 운동선수였을 때는 시합도 나가고 항상 육체적 한계에 부딪히다가 나이가 들면서 또 점점 사업도 커지면서 멀어졌어요. 근데 그 멀어지는 자신이 한번씩은 서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한데, 서울에 특히 오래 올라가 있으면 ‘나는 서핑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까먹을 때도 있어요. 바다 들어갈 때도 어색하고, 근데 제주 내려와서 바다에 들어가면, 몸이 알아서 기억을 해주는 거예요. 그때 ‘아! 나는 살아있구나’싶은 거죠. 그리고 태풍 올 때 서핑을 하는 이유는 한국이 그렇게 파도가 많은 곳은 아닌데 태풍 올 때는 그래도 포인트를 잘 찾으면 해외 못지않은 파도가 들어와요. 여기, 아내가 해준 건데 타투가 있어요. ‘No Risk, No Fun’이에요. 리스크 없이는 재미도 없다. 삶에서 언제나 밸런스를 조절해야 하잖아요. 리스크가 크면 즐거움도 크게 오고, 하지만 리스크가 적어지면 즐거움도 좀 적어지고. 그거를 평생 저울질하면서 살게 되는데 파도를 탈 때 그게 너무나 명확하더라고요. 정말 크고, 샤프하고,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베럴은 파도만큼 수심이 깊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수심이 얕아서 생명을 걸고 들어가야 되는 거거든요. 제가 인도네시아 오지, 숨바와라는 곳에서 베럴을 타다가 떨어져서 머리를 박아서 머리를 꿰맨 적도 있었죠.ㅎㅎ


Q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과제가 있나요?


사실 저는 서핑은 매번 도전하고 있는 것 같고요. 지금도 프로라고 하지만 프로도 1~10등이 있고, 20~30등이 있어요. 당연히 어릴 때부터 훈련하고 지금도 훈련하는 친구들이 1,2,3등을 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관리를 잘하고 시합에 나갈 때 잘 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시합을 하는 것 자체도 너무 좋고, 제가 살아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2부 DJ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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